42년통치 독재자 카다피 처참한 몰락의 교훈




1942년 리비아 시르테주 수르트에서 태어났다. 1963년 벵가지의 리비아대학을 마쳤다. 1965년 리비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이집트 가말 압델 나세르(Jamal ‘Abd an-Nāser)의 이집트 혁명 과정을 본받아 자유장교단을 결성하였다. 1969년 9월 27세의 나이에 육군 대위로 복무 하던 중 동료들과 쿠데타를 결행하여 왕정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장악했다.

집권 초기 국가원수•총리•국방장관을 겸임하며 반미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 사상을 기초로 한 단일 아랍국가 건설을 주장하였다. 미국과 영국의 군사기지를 철수시키고, 외국자본을 배제하였으며 이탈리아 정착민들을 국외로 추방했다. 또 석유가격을 일방적으로 공시(公示)해 주요 석유생산국들의 시장독점에 반대하였고 석유회사를 비롯한 도로, 항만, 항공 등 국가기반시설을 국유화(國有化)하였다. 이후 대규모 유전 개발과 리비아 대수로을 비롯한 대형 국토개발 사업을 추진하여 아프리카의 빈국에서 벗어나기 위한 경제개발 정책을 추진했다.

이집트, 시리아 등과 함께 아랍권이슬람 단일국가인 아랍 공화국 연방 건설도 추진했으나 외교관계 악화와 중동 사회의 불안으로 무산되기도 했다. 1972년 8월에는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Anwar Sādāt) 대통령과 아랍연합의 결성에 대해 합의했지만, 같은 해 10월 제4차 중동전쟁카다피사다트의 평화정책에 반대하면서 양국의 갈등이 심화되어 합의가 결렬되었다. 또 1980년에는 시리아와의 합방을 선언했으나, 곧이어 벌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합방을 포기 했다.

리비아 국내 정치에서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입각한 문화혁명을 지도하였다. 음주와 도박을 금지시켰으며 완전한 이슬람공동체를 건설을 구상하였다. 그의 정치 이론은 그가 집필한 《녹색서 The Green Book》(1976)에 밝혀져 있다. 1977년 사회주의, 이슬람주의, 범아랍주의를 융합한 자마히리야(인민권력) 체제를 선포한 그는 인민직접민주주의라는 독특한 체체 구축을 명분으로 내세워 의회제도와 헌법을 폐지하고 전제 권력을 강화하였다. 이후 장기 집권, 독재 정치, 인권 탄압, 테러 지원, 핵실험 의혹 등으로 수많은 국제적인 비난과 경제 제재 조치가 뒤따랐다.

카다피는 국제관계 경색을 타파하기 위해 2000년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자 이라크와의 외교를 단절함과 동시에 서방 국가에 개방을 선언하고 화해 정책을 쓰기도 했다. 2003년 대량살상무기(WMD) 포기 선언 후 2004년에는 대미외교관계 복원에 힘써, 이에 미국은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였다. 또, 과거 리비아를 식민 지배했던 이탈리아의 사과를 받아 들이고 과거 리비아가 이탈리아에 행했던 보복활동에 대해 유감의 뜻을 전달하는 등 대외 관계에 개선을 위한 조치를 취해왔다. 하지만 사우디 아라비아 등 친서방 아랍국가를 비난하면서 외교분쟁은 계속되었고, 국제 사회는 국유화한 석유를 통해 획득한 막대한 재원이 정권유지와 국제 테러 단체에 대한 지원에 쓰이고 있다는 사실에 비난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리비아 내에서 카다피의 입지도 날로 좁아져 갔다. 42년간의 장기집권과 철권통치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가 2011년 2월에 시작된 후 카다피군은 유혈 보복을 선언하며 시민군과의 내전을 지속했다. 그러나 결국 나토(NATO)와 세계 각국의 지원 속에 시민군이 수도인 트리폴리를 장악했고, 카다피군의 세력은 날로 쇠했다. 트리폴리 함락 후 도피해 행적이 묘연했던 카다피는 같은 해 10월 20일 최종 은신처로 지목되어온 고향 시르테에서 시민군에 의해 체포되었고 그 과정에서 총상으로 사망했다.

[출처] 카다피 [Muammar al- Qaddafi ] | 네이버 백과사전

27세의 젊은 육군대위가 구테타를 일으켜 왕정을 철폐하고 스스로 절대군주가 되어 42년간리비아를 통치하다가 시민반군에 의해 결국 고향 스루트에서 도주중에 잡혀 처참하게 국민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튀니지에서 한 가난한 젊은 가장이 노상을 하며 먹고살다가 정부 관료에의해 강제철거를 당한후 분신자살을 하자 전 중동 아랍국에서 민주화혁명이 시작되었다. 그불길은 이집트 장기독재 무라바크정권을 무너지게하였고 이어 리비아 카다피 정권이 처참한 독재자의 말로를 가져오면서 종료되었고 이웃나라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정권과 예멘의 알리 압둘라살레 정권도 시민혁명에의해 막다른 도미노식 붕괴절벽에 처해가고 있다할것이다.

한 억울한 시민의 분실자살이 작은 나비의 날개짓 작은바람(나비효과)으로 불기시작하면서 전중동국가를 민주화혁명의 큰바람과 태풍으로 요동치며 들끓게 하고있다할것이다.

그런나비효과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며 가장엄한 징벌과 감시체계를 가진 북한에게는 나타날수없는 구조라는것이 북한의 특징이라할것이다. 오히려 리비아에 나토군이 진입한 2011년 3월22일에 북한 외무성의 발표는 리비아에게 핵포기를 주창하였던 서구제국이 리비아가 2003년 핵포기 선언을 하고 무장해제를 하자 이기회를 이용하여 군사적으로 덮치는 침략을 전개 하고있다고 크게 비난하고있다..

이는 북한정권은 핵폭탄으로 더욱 무장하여 군사강국화하여 벼랑끝 전술로 나갈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역설적인 대외적 공갈이라 할것이다.,

북한은 시민봉기도 발생하기 어려운 국가적 상황이고 핵으로 너죽고 나죽자로 나오면 아무리 군사대국이라해도 섯불리 나설수가 없다할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사망하면 북한정권은 끝나지 않겠느냐며 여러 가지 가설을 제기하고 그전략적대응을 모색하고 있으나 김정일 사후 벌어질수있는 핵관리 통제와 장악이 무엇보다도 매우 중요한 관건이 아닐수 없다할것이다.

가디피는 아랍의 맹주가 되기위하여 79년도에 반미국 반이스라엘 외교정책으로 나가면서 가다피 지지시위대가 미국대사관에 방화함으로서 미국과 단교하게 됨으로서 미국과 적대국으로 대치하고 갈등하게되었다, 86년 4월에는 미군이 출입하는 베를린 디스코텍에 폭탄을 던져 미군들이 폭사하자 당시 레이건 미국대통령은 카다피를 중동의 미친개로 규정하고 트리폴리를 대대적으로 공습 폭격하였다. 이에대한 보복으로 카다피는 88년 12월 런던에서 -뉴욕으로가는 팬암여객기를 폭파시켜 270명이 하늘에서 공중분해된것이다.

그사건 1년전 87년에는 88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의 KAL기가 버어마상공에서 북한의 테러로 폭파당하였다

팬암여객기 폭파로 탑승하여 희생된 영국,미국,프랑스국민들의 죽음은 금번 리비아 시민혁명 반군에 나토군 선발대로 앞장서 연합군으로 뭉처 카다피제거 작전에 참여하였다할것이다.

미국은 자국군대 한명도 파견안했지만 무인항공기 프레테더 드론을 보내 위성정보를 이용한 기습작전을 펴 카다피가 수르트에서 80여대로 도주하는것을 잡아내어 공격 목표물을 프랑스 미라지 제트기와 함게 출동하여 폭격함으로서 결국 카타피를 시민 반군에의해 체포되어 사살되도록 한것이다. 미국에게 큰 테러를 가하고 사살당한 오사마빈라덴이 있듯이 21세기 미국의 경제력이 기울어지고 있다할지라도 미군의 첨단 군사 과학기술과 가공할 군사력을 따를 국가는 현재와 가까운 미래에도 있을수 없음을 증명하고있다 할것이다. 리비아는 세계 7위권의 산유국으로서 내전이 종결됨과 동시에 137조 재건산업이 시작되는데 미국,영국,프랑스가 이미 그 지분을 리비아 과도정부위원회로부터 인증받고 있다할것이다.

한국도 리비아에 현재 진행 개발중인 건설사업이 대단히 많이있기에 재건참여는 자연스럽게 진입하게 될것이며 발전소와 담수화시설등 한국이 세계 경쟁력을 가지고있는 대단위 국책사업부분에 있어서는 상기 나토참전 대표국과 콘소시엄 및 조인트벤처연합을 통해 참여하는 발빠른 외교전략을 펼처내야할것이다. 과거 중동특수로 누렸던 한국경제의 성장이 보여지는 대목이 아닐수 없다할것이다.

가다피와 동아건설의 최원석회장은 리비아의 사막을 옥토로 바꾸는 단일공사로 세계최대 사업이며 세계 8대불가사의 프로젝트라고 말하는 리비아 대수로 사업을 함께한 사람이다.

지중해의 물을 5267키로에 한개의 콘크리트관 무개만 75톤짜리를 남부 사막지방으로 이어서 연계하여 한반도 6배면적에다 농업,공업,생활용수를 공급하여 옥토화시킨다는 놀라운 녹색혁명을 추진한것이다. 이프로젝트 사업은 리비아국민과 전세계를 열광시켰고 한국인의 놀라운 토목기술과 저력을 알리는 계기가된것이다. 최회장은 지도자로서 카다피의 통크고 담대한 당시의 정신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42년간 과다한 기간의 독재정치로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되어있는 가족과 측근들의 부패와 독선은 27세 육군대위로서 일으킨 조국번영을 향한 애국심의 초심을 잃고 집권이 길어지면서 반대파에대한 무자비한 숙청이 시작되었고 부정부패의 자정능력을 상실하게되었고 독재의 공통적 특성으로 나타나는 주변 의 인의장막으로 국제정세와 국민정서를 바르게 파악못하고 권력의 끝자락에서 허우적 거리다 비참한 최후를 맞게되었다할것이다.

최고 제왕적 독재권력 중독은 이성을 상실케하므로 죽어서야만 그 권력을 내려 놓을수 있다는 무서운 속성적 역사적 진리를 다시한번 보여주는 실증적 사건이 아닐수없다할것이다.

그가 가족들과 측근들만을 위한 파티에 불러서 공연했다는 세계적인 팝가수 비욘세, 본조비, 머라이어케리, 어셔등도 카다피의 몰락과 함께 망신아닌 망신을 당하자 비욘세는 불우아동사업에 그 공연수익금을 모두 내놓았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하였다.

세상인심이라는것이 권력과 돈앞에 양심을 팔다가 권력이 무너지면 침을 뱉어대는것이 어쩔수없는 인간의 야누스적 얼굴이다.

그가 부정축재한 어머어마한 수백조의 국제은행돈은 현재 각국에서 동결하고 있지만 리비아과도정부에게 모두 돌려주어서 리비아 재건산업에 투자된다고 나토측에서 발표하였다.

2009년 이태리에서 개최된 G8확대정상회의에서 이명박대통령과 카다피는 바로 옆자리에 앉아 회의를 하였는데 이대통령이 아프리카 국가에게는 맞춤형 식량지원을 해야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자 옆에있던 카다피가 이대통령의 손을 잡더니 감격의 말을 중얼거렸다한다, 곧이어 그는 가난한자들은 치료비가 없으므로 의사에게 주어야하는 치료비는 국가가 내줘야만한다는 휴머니티적 발언을 한것을 보면 가난한 국민에대한 따뜻한 배려도 읽을수 있는 대목이라할것이다. 2010년 8월경 리비아주재 한국대사관 2명이 간첩혐의로 리비아당국에 체포되었는데 이대통령의형인 이상득의원이 특사로 나가 카다피를 대통령궁에서 만나 통크게 해결한날이 바로 어제같은데 1년후 그 카다피가 하수도관에 숨어있다가 시민의 손에 죽었다니 인생이란 허무하기도하고 내일을 기약할수 없는 일이라고 혀를 찰일이 아닌가?

카다피에게 원조를받은 아프리카국가증 우간다는 4300억원을지원받아 모스크사원,통신사,제과공장을건설하여 그를 서구제국주의에 맞선 혁명가 및 순교자로칭송하고있으며 말리에게는 그의지원으로 국영TV방송국 및 정부청사도건축하여주었다, 차드, 니제르, 모리타니, 등 아프리카 전체에 투자한금액이 170조원이나 투자한것은 그가지향하엿던 아프리카 통일연합의 최고실력자가 되기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할것이다.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초심과 진지함이 사라지고 오만함, 무모함으로 인한 각종 개인적기행등이 나타났고 심지어는 세계혁명본부를 만들어 무장게릴라를 양성하여 세계질서를 어집럽히는 정치적 이단자로 서방국으로부터 정치적제거 1순위자로 대두되었다할것이다.

핵포기를 포기하고 개방세계로 나왔으나 옆나라에서불어된 민주화혁명 강풍은 42년의 철권통치만큼그가 그토록 사랑하였다던 자국의시민들로부터죽임을 당하고 벌거벗거져 길바닥에 끌려다니는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볼수없는 상황이었다할것이다.

카다피뿐 아니라 우리 인생사는 끊임없는 욕심으로 허상을 쫓다가 제무덤을 파다 죽는것이 아닌가?

항상 마음을 비우면서 역사의 기록을 위해 오늘을 겸허하고 자기희생적으로 살아야 업적에 대해 존경을 받을수 있음을 특히 지도자들은 명심해야 할것이다.

카다피가 죽자 사르코지 프랑스대통령은 리비아국민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교황청은 가타피의 죽음이 오래 이어진 비극적인 리비아국민의 유혈극을 종식시킬것이다.

오마바 대통령은 철권통치는 반드시 무너진다.

힐러리 클린턴장관은 와우! 왔노라, 보았노라, 그는 죽었노라!

리비아는 수십개로 구성된 약36개의 크고작은 베드윈의 유목민족 연합국가이므로 내전을 잘수습하고 복수에 복수를 할것이 아니라 상처치유와 재건을 위해 국민모두가 단합할 시간임을 적시하고있다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선언하고 있다할것이다.

미국과 적대시하며 카다피와 친교했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대통령은 망명하지않고 자국에서 죽은 카다피를 혁명가, 순교자, 전사자로 기억될것이다라고 설파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자란다는 말을하지만 일반국민들의 희생이 너무커서는 안될일일것이다. 현재도 북한을 비롯하여 독재에 신음하는 국민들이 민주주의 제도 시스템을 자발적으로 도입하여 피를 흘리지않고도 평화롭게 정권을 이양하며 번영 할수있도록 선진국들이 적극 도와주고 이끌어주어야할것이다, 또한 이민주주의 제도를 각 정치후진국에 적용할수 있도록 국제적 정치발전 시스템으로 만들고 그 명분을 만들어줌으로서 건강한 민주발전을 도모할수있는 영구적인 번영을 구가할수있도록 해야할것이다.

칼럼리스트 김병민

Posted by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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