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국인 최초의 세계적인 여행가 혜초
1300여년전
혜초 스님은 신라 성덕왕 3년(A.D 704년)에 출생하여 16세때 중국 당나라 광저우로 건너가 인도에서 온 스승 금강지를 만나 그 가르침을 받고 20세에 광저우를 출발하여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4년간 2만키로를 넘는 여정을 여행하고 여행 기록인 『왕오천축국전』을 남겨 세계문화교류에 크게 이바지한 한민족 최초의 세계적인 여행가 이다. 이두루마리 여행기가 발견된것은 1908년 프랑스 동양사학자인 펠리오에의해 돈황 막고굴에서 발견되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것이다.
그진본은 프랑스정부가 소유하고 있으며 2010년 말에서-봄까지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함으로서 죽어서 몸은 못왔어도 그가 남긴 필사본진본이 1300년전이
지나 한국땅에 잠시 다녀갔다.
이명박대통령도 이진본을 참관하고 혜초스님을 역사의 선각자로 존경을 표하였다.
혜초는 이국땅을 여행하면서 고국 고향에 대한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달밝은 밤에 고향을 바라보니 하늘가 북쪽에는 내나라가 있거늘”
혜초는 『왕오천축국전 』의 내용으로 보아 현재 상하이지역 까지는 해로를 통해 갔다가 육로로 장안(서안)까지 돌아 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여행후 다시 장안으로 돌아온 혜초는 733년 장안의 천복사(薦福寺)에서 도량
을 열고 스승 금강지와 함께 밀교경전을 연구하였다. 금강지가 죽은 이후 혜초
는 불공삼장으로부터 다시 이 경전의 강의를 받고, 774년 가을 대흥선사(大興善
寺)에서 다시 역경을 시작하였다. 이때 혜초는 불공의 6대제자 가운데 제2인자
로 유촉(遺囑)을 받았으며, 중국 밀교의 법맥은 금강지-불공-혜초로 이어지게 되었고 불공이 죽은 직후 혜초는 동문. 제자들과 함께 황제에게 표문을 올린 기록이 있으며 그뒤 수년 동안 장안에 머물러 있다가 780년 불경을 번역하기 위하여 오대산 건원 보리사에 들어가 노년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787년에 입적한 것으로 전해지고있다. 중국 불교 역사에서도 큰 족적을 남긴 위대한 큰스님이 아닐수 없다할것이다.
혜초가 남긴 『왕오천축국전』은 1908년 3월 중국 둔황의 천불동(千佛洞)에서
발견되었다. 이 책은 약본이기 때문에 인도의 각 지역은 물론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들에 관한 서술이 단편적으로 간략한 서술을 기록하고 있으나 매우 중요한 사료적 의의를 지닐수 밖에 없다는것은 당시 8세기 인도의 정치·문화·경제·풍습 등을 알려주는 유일한 기록이며 인도기행이 육로와 해로가 같이 언급되어 있고, 일반적인 정치적 정세이외에도 각지역 대승불교 또는 소승불교가 각각 어느 정도 발전되고 있는지, 또 음식·의상·풍습·산물·기후 등도 각 지방마다 문화 사회적인 역사기록이 되어 있으므로 당시 현황에 대한 사료적 가치가 크게 돋보인다는 점이다. 이 『왕오천축국전』은 중국 학자 나진옥과 일본의 후지타 도요하치 독일의 폭스등 각국 사학자에 의해 먼저 크게 인정받고 집중 연구발표 되었다,
그후 북한 사학자들도 연구하여 발표하였고 우리는 제일나중에 한국의 고병익, 이석호,최남선,-정수일교수등에 의해 역본되고 그 연구가 지속되고 있다할것이다.
문화관광부는 2011년 2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된 혜초 스님의 생애와 업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사)가산불교문화연구원과 협조하여 『세계정신을 탐험한 8세기 위대
한 한국인 - 혜초 스님』이란 주제로 학술세미나 국립중앙 박물관 개최)하였고 2월에는 왕오천축국전 원문·번역문·연구논문을 수록한 학술자료집을 발간하였으며 대한불교 진각종, 현대불교신문사와 협조하여 불교계 연합합창단, 중앙국악관현악단 300여명이 출연, "혜초의 생애와 구도여정을 그린 국악교성곡"과 "선음악 혜초" 오카리나 연주 등 기념 음악회를 개최하여 혜초스님을 크게 기리고 있다할것이다.
또한 각단체와 대학에서도 혜초 루트 원정대를 구성하여 해마다 서안-실크로드-파키스탄(카라코롬하이웨이)-인도 각지역을 도는 여행을 진행하고 있을 정도로 혜초의 인기는 날이갈수록 그 관심이 치솟고 있다할것이다,
(혜초 루트 여행 안내=070-8244-4440)
혜초가 1300여년전에 기록한 여행서 왕오천축국전은 8세기의 인도 및 서아시아,중앙아시아를 대한국인의 시각으로 돌아보며 서술한 종합 역사문화서이다. 특히 이슬람문화권에 대한 중국 및 불교 문명권을 한국 불교스님이 쓴 최초의 기록서라는데 국내는 물론 세계사적인 보물적 가치가 있다할것이다.
동양에서 혜초에 앞서 전 아시아대륙 중심부와 이슬람권까지를 해로와 육로로 일주한 사람은 혜초가 역사상 최초이고 그분이 한국인이라는데 우리는 자긍심을 갖게되는것이다.
우리 한국인은 반도사람으로서 대륙과 해양의 길목에서 살아왔으며 교통의 교차점에서 전세계로 뻗어나가야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할것이다.
현재도 전세계 각국에 5천여개 태권도도장을 비롯하여 700여만명에 가까운 한국인이 해외각국에 현지화되어 자랑스럽게 대부분 인정받으며 존경받고 살고있다.
이는 인구비율로 따지면 세계 1-2위권이고 인구 절대수를 따지면 4-5위권으로 세계 어디를 가도 각나라에 뿌리를 내리며 정착을 할수있는 성실하고 자랑스런 국민이 아닐수 없다할것이다.
신라인 혜초도 1300여년전 어린 16세의 나이로 당나라로 유학가서 30세까지 불굴의 의지와 거칠것 없는 도전정신을 가지고 각처로 여행을 다니며 당시대의 역사문화를 탐구하면서 후세에 이를 전하게된것이다. 마르코폴로, 이븐밧투타와 비교하여 절대 손색이 없는 한국인 최초의 글로벌의식을 가진 대한국인 으로서 자랑스런 한국인으로서 영원히 남을것이다.
우리 젊은이들도 보다 큰 야망을 가지고 한류문화가 전세계국민들을 열광시키는것 처럼 전세계로 진출하여 세계평화를 위해, 세계 문명사 발전을 위해 혜초처럼 역사에 남는 자랑스런 한국인으로 발전하기를 기원하면서...
김병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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